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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당원이 20만 명을 살린 역설 — 욘 라베에 대해 당신이 몰랐던 것들

그는 나치 당원이었습니다. 그리고 20만 명의 목숨을 구했습니다.1937년 난징. 일본군이 도시를 휩쓸던 그 6주 동안, 한 독일 기업인이 나치 깃발을 펼쳐 사람들을 그 아래 숨겼습니다. 욘 라베 — 역사에서 가장 모순적인 영웅의 이야기입니다. 🌿 ◆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 27년간 중국에서 산 지멘스 직원욘 라베를 이해하려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1882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라베는 1908년 중국에 도착했고, 1910년부터 난징과 베이징, 상하이 등지에서 지멘스 AG 중국법인을 담당했습니다. 무려 27년을 중국 땅에서 산 사람이었습니다. 중국어를 할 줄 알았고 중국 이웃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나치당에 가입한 것도 이념적 신념이 아니라 당시 해외 독일인 사회에서 당원이 되는 ..

조선 최고의 천재가 역사에서 사라진 이유 — 장영실에 대해 당신이 몰랐던 것들

조선왕조실록에서 그의 이름은 1442년 이후 완전히 사라집니다. 세종대왕이 가장 아끼던 천재가, 어느 날 갑자기 기록에서 지워진 것입니다.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장영실 — 노비로 태어나 조선 최고의 과학자가 됐다가, 홀연히 사라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 ◆ 그는 노비였다 — 그것도 두 가지 피가 섞인장영실의 어머니는 동래부 관기였습니다. 즉 관에 소속된 신분이었고, 어머니가 그러하면 자식도 자동으로 관노비가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더 특이합니다.세종실록에 기록된 세종대왕의 발언에 따르면, 장영실의 아버지는 중국 소주, 항주 지방 출신의 원나라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조선 노비, 아버지는 원나라 출신 중국인.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조선 최고의 과학자가 됩니다. 이름도, 생..

크리스마스이브에 잠입한 남자 — 나석주에 대해 당신이 몰랐던 것들

1926년 12월 28일.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총성이 울렸습니다.폭탄을 던지고 총을 쏘고, 끝내 자신의 가슴에 세 발을 쏜 남자. 그 이름은 나석주. 그런데 그날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 그는 원래 선생님이었다나석주라고 하면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그가 독립운동에 나서기 전, 황해도에서 학교 교장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3.1 운동 이후 군사자금을 모금해 상하이 임시정부에 보내고, 황해도에서 일본 경찰과 면장을 살해한 뒤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교단을 떠나 총을 든 것이었습니다. 그 결심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 김구의 경호원이었던 사람상하이 임시정부에서 그..

"나의 고향 한국으로 가고 싶다" — 배득화, 30년을 머문 독일 사람

한국을 떠난 지 사흘 만에 눈을 감으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고향 한국으로 가고 싶다." 독일에서 태어난 사람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에른스트 뵈트거. 한국 이름 배득화. 그 이름은 스스로 지었습니다. 🌿◆ 구호물자와 함께 온 사람, 돌아가지 않은 사람6.25 전쟁이 끝난 뒤 독일 교회는 폐허가 된 한국으로 구호물자를 보냈습니다. 뵈트거는 그 물자와 함께 왔습니다. 그리고 독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당시 한국의 상황은 처참했습니다. 1952년 전국 결핵환자가 120만 명에 달했고, 전쟁 직후인 1954년 결핵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350명으로 급증한 상태였습니다. 거리에는 결핵 환자들이 쓰러져 있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병원 문턱을 넘을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뵈트거는 독일에서 ..

한강의 기적을 만든 사람들 — 폐허에서 선진국까지, 그 뒤에 있던 이름들

1953년. 6.25 전쟁이 끝났습니다.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였습니다. 아프리카 가나보다 낮았습니다. 전국토가 잿더미였습니다. 전문가들은 말했습니다. "이 나라는 100년이 지나도 자립하기 어렵다."그로부터 40년이 지난 1996년, 한국은 OECD에 가입했습니다. 2019년 기준 인구 5,000만 이상,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을 동시에 달성한 나라는 전 세계에 일곱 나라뿐이었습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이들 중 20세기 이전에 이미 공업화를 이룬 나라가 아닌, 1960년대에야 공업화를 시작한 나라는 한국뿐이었습니다. 세상은 이것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기적의 뒤에 이름들이 있었습니다. 🌿◆ 유일한 — 재산을 사회에 돌려준 기..

"내 행방을 모른다고 하시오" — 지청천에 대해 당신이 몰랐던 것들

1919년 봄. 일본군 중위가 사라졌습니다.아내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새 이름을 지었습니다. 지청천. 푸른 하늘이라는 뜻이었습니다.그 이름 하나가 대한민국 군대의 뿌리가 됐습니다. 🌿◆ 본명은 지대형 — 이름이 다섯 개였던 사람지청천은 본명이 아니었습니다.본명은 지대형(池大亨)이었습니다. 아명은 수봉(壽鳳), 관명은 석규(錫奎)였고 독립운동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지은 이름이 청천(靑天)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성씨까지 바꿔 이청천으로 불렸을까요.지씨는 상대적으로 희귀한 성씨였기 때문에 조선인 중 지씨 성을 가진 이들이 보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성씨인 이씨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제의 지명수배를 피해 지수봉, 지을규, 이청천, 이대형 등 여..

사이구 — 1992년 4월 29일, 우리가 몰랐던 LA의 기록

1992년 4월 29일.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지켜주지 않았습니다.그날 지붕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사이구(四二九). 한인 사회가 그날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잊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 ◆ 불씨는 어디서 시작됐나 — 로드니 킹 사건LA 폭동의 시작은 한인 사회와 직접 관련이 없었습니다.1991년 3월, 흑인 남성 로드니 킹이 음주 과속으로 경찰에 검거되는 과정에서 4명의 백인 경찰관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영상으로 촬영돼 TV에 공개됐습니다. 흑인 사회는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1992년 4월 29일 그 경찰관들이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무죄 판결 소식이 전해지자 수천 명이 거리로 쏟아졌습니다. 시위가 폭동으로 변했습니다...

숭례문이란 무엇인가 — 600년 역사의 기록

서울 한복판에 서 있는 돌과 나무로 된 문 하나.매일 수십만 명이 그 앞을 지나칩니다. 차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거나, 지하철역 이름으로 듣거나, 사진 속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문이 얼마나 오랜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숭례문.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을 지킨 문의 기록입니다. 🌿◆ 이름에 담긴 뜻 — '예를 높이는 문'숭례문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 아시나요.조선 도성의 사대문 이름에는 유교의 오덕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관념을 담았습니다. 동쪽은 흥인문(인), 서쪽은 돈의문(의), 남쪽은 숭례문(예), 북쪽은 숙청문(지), 그리고 중앙 보신각은 신을 담았습니다. '숭례'는 예를 높인다는 뜻입니다. 단순한 문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이 추구하는 가치를 도성..

"열여섯에 정을 잡아 숨이 멎는 날까지" — 이의상 석장에 대해 당신이 몰랐던 것들

2026년 4월 21일.한 노인이 눈을 감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그의 손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보는 숭례문은 없었습니다.이의상 석장. 돌과 함께 68년을 산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 '석장'이란 무엇인가이의상이라는 이름 앞에 붙은 '석장(石匠)'이라는 말이 낯선 분들이 많을 겁니다.석장은 석조물을 가공하거나 이를 이용해 토목 및 건축의 기반을 닦는 기술과 그 기능을 가진 장인입니다. 주로 사찰이나 궁궐 등에 남아있는 불상, 석탑, 석교 등을 만들고 복원합니다. 기계가 아닙니다. 손입니다. 정입니다. 망치입니다. 돌 하나하나를 손으로 깎고 다듬어 600년 된 건물을 살려내는 사람들입니다. 이의상은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세대의 거장이었습니다.◆ 열여섯 살, 정을 처음 잡..

"내 인생의 꽃봉오리였습니다" — 선우경식에 대해 당신이 몰랐던 것들

서울 영등포 쪽방촌 골목.문도 열기 전부터 환자들이 줄을 서는 병원이 있었습니다. 입구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다른 병원을 이용해 주십시오."돈 없는 사람만 오는 병원. 요셉의원. 그리고 그 병원을 21년간 지킨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 평양에서 태어난 아이선우경식은 1945년 7월 31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해방 직후였습니다. 그리고 6.25 전쟁이 났습니다.1.4 후퇴 때 가족과 함께 남한으로 내려왔습니다. 대구 피난민 수용소에서 5년을 지낸 후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전쟁으로 외삼촌을 잃은 부모님은 아들이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길 바랐습니다. 피난민 수용소에서 자란 아이가, 훗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의사가 됐습니다. 그 출발점이 어디였는지 돌아보..